3 Dots
▪ 영국의 록 밴드 콜드플레이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을 기점으로 투어 전반을 친환경적으로 재설계했다. 퇴비화 가능한 LED 팔찌, 태양광 무대, 음수대 워터 스테이션, 자전거 발전 시스템 등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하며 환경친화 콘서트의 선구자로서 음악이 지구와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 트립합 밴드, 매시브 어택은 지난해 브리스톨에서 열린 3만 5천 명 규모의 페스티벌을 철저히 친환경적으로 운영해 역사상 가장 낮은 탄소 배출 공연 기록을 세웠다. 빌리 아일리시 또한 투어 전반에 걸쳐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 채식 메뉴 확대, 대중교통 유도, 재활용 소재 굿즈 제작 등 지속가능한 투어 문화를 이끌고 있다.
▪ 영국의 음악 축제, 글래스톤베리는 모든 무대와 시설을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하고 철저한 분리수거 시스템으로 탄소 제로 축제를 실현 중이다. 일본의 후지록페스티벌 역시 숲 보호 프로젝트를 통해 간벌 나무로 일회용품을 제작하고, 재활용 및 친환경 화장실 시스템을 도입해 자연과 공존하는 축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는 무더위 속에서도 뜨거운 열기를 만끽하며 즐기는 록 페스티벌이 있다. 물론 부산록페스티벌처럼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열리는 페스티벌도 있다. 하지만 록페스티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처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방학이나 휴가 기간에 맞춰 한 손에 맥주나 음료수를 들고 강렬한 태양 아래서 그보다 강렬한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해마다 더 뜨거워지는 여름을 맞이하는 지금, 과연 야외 록페스티벌이 앞으로도 계속 여름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을지 록 음악 팬들은 슬슬 진지하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는 관객뿐 아니라 공연을 이끌어가는 아티스트들도 당연히 마찬가지이다. 건강하지 않은 지구 위에서 평화롭게 음악을 즐기기란 점차 더 어려워지기 마련일 테니 말이다. 이러한 고민을 직접 다양한 방법으로 앞장서서 실험하고 시도하며 풀어가려는 밴드가 있다.
기후 친화적인 공연의 선봉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팀은 바로 영국의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다. 콜드플레이는 1996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보컬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기타리스트 조니 버클랜드(Jonny Buckland), 베이시스트 가이 베리먼(Guy Berryman), 드러머 윌 챔피언(Will Champion) 이렇게 4인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전 세계 곳곳으로 투어를 다니는 슈퍼스타 밴드로, 한국에서도 <Yellow>, <Viva La Vida>, <A Sky Full of Stars>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는 8년 만의 내한 공연인 <MUSIC OF THE SPHERES>로 한국을 찾았는데, 지난 2025년 4월 16일부터 25일까지 총 6회에 걸쳐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 약 30만 명의 관중을 모으며 큰 호응을 얻었다.


기후 위기도 놀이처럼 풀어가기 : 콜드플레이
평소 기후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실천하기로 유명한 콜드플레이는 수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세계 투어를, 보다 기후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 중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100% 퇴비화 가능한 식물성 소재로 제작된 LED 팔찌 “자이로밴드”다. 공연 중 중앙콘솔 연출에 따라 무대뿐 아니라 관객석마저 형형색색의 조명 연출에 참여할 수 있다. 팀마다 다르게 제작된 특색있는 응원봉을 팬이 직접 구매해 사용하는 한국 가수들과 달리, 해외에서는 재사용 가능한 LED 밴드를 무상으로 나눠주고 공연 후 이를 수거해 소독한 후 다음 공연에서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또한 기념으로 몰래 들고 가는 팬들이 있기 마련. 이에 콜드플레이는 공연 시작 전 전광판에 이전에 공연을 진행한 나라들의 자이로밴드 회수율을 반복해 띄우며 LED 팔찌 회수율 기록이 마치 도시 간 대항전을 치르는 것처럼 은근한 경쟁심리를 자극해 최종 회수율을 높였다. 마침 한국 공연에서는 직전에 진행된 일본 도쿄 공연의 97% 회수율을 뛰어넘으려는 한국 관객들의 많은 참여가 뜻밖의 한일전 열기로 이어졌고, 그 결과 서울 공연의 회수율은 최종 99%로 마감되었다.
이 외에도 공연장 내에서 역시 지속가능한 공연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요소와 시도들이 눈에 띄었다. 공연장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일회용 생수병 반입 제한 정책이었다. 공연 입장 전 가방 검사를 통해서 철저하게 플라스틱 생수병 반입을 금지했으며, 대신 공연장 내 음수대인 “워터 스테이션”에서 자신이 들고 온 텀블러에 물을 받아 마실 수 있도록 마련해 두었다. (다만 한국 공연에서는 짐 검사에서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금지하였으나 공연장 내 워터 스테이션에서는 기존의 음수대와 함께 플라스틱 대형 생수통을 음수대로 이용해 콜드플레이가 지향하는 노 플라스틱 정책을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공연장 내부, 1층 스탠딩석의 후면에는 눈에 띄는 동그란 모양의 공간이 있었다. “키네틱 플로어”라고 명명된 이곳은 관객들이 원 안에 들어가서 마음껏 뛰거나 점프하며 발을 구르면 이때 발생하는 진동 에너지를 공연을 위해 사용하는 전력으로 변환시킨다. 또한 공연장 한쪽에는 배터리를 발생시키는 자전거 또한 설치되었는데, 관객들은 공연을 기다리며 한 번씩 자전거를 굴려보며 재미를 누렸다. 또한 여기서 발생한 전력은 BMW와의 협력을 통해 개발한 재활용 가능 배터리를 사용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점프하는 관객의 움직임이 공연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 또한, 관객들이 기후 친화적인 공연을 만들어가기 위한 시도에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참여자가 되고 그 안에서 재미도 찾게 만드는 콜드플레이 공연 기획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관객들의 눈에 다 드러나지 않은 숨은 노력도 있다. 2019년 말, 콜드플레이는 마치 코로나19 사태를 예언이라도 한 듯이 향후 2~3년 동안 환경 보호를 위해 세계 투어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세계적 규모의 월드 투어가 무대 제작 및 공연 당일에 쓰는 전기, 자원 등을 포함해 이동을 위한 물류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의 양은 일반인으로선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 언론에 따르면 가장 극단적인 예로 2009년 U2의 공연에서는 이동에만 무려 트럭 120대가 필요했고 화성을 왕복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에 맞먹는 수치의 탄소를 발생시켰다고 한다.
이런 전례를 꼼꼼히 살핀 결과 2022년, 콜드플레이는 약속대로 <Music of the Spheres> 투어를 지속가능한 공연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가지고 돌아왔다. 탄소 배출량 50% 감소를 목표로 내부 중앙, 바닥, 외부 홀 등에 태양광 타일을 설치해 무대 설치와 동시에 태양광 배터리 충전 시스템, 무대 및 효과에 생분해성 또는 재활용 가능한 재료 사용, 저에너지 LED 스크린 등 무대 세팅 등 지속가능한 변화 전략을 마련했다.
또한 운송회사인 DHL과 파트너십을 맺어 <GoGreen Plus 솔루션>을 도입해 항공, 해상, 육로 운송 전반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탄소 배출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항공 운송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항공 이용을 자제하고, 일부 항공 이동과 전세기 이용 편에는 지속가능한 항공유(SAF) 사용을 위한 추가 요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육상 운송에는 전기 트럭이나 바이오디젤 차량 등 저탄소 운송 수단을 활용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공연 수익의 일부로 해양 정화 및 나무 심기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환경에 관한 이들의 관심과 시도는 비단 공연에만 그치지 않고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에코레코드 시리즈로 이어졌다. 2024년 10월 발매한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 《Moon Music》의 LP와 CD를 세계 최초 재활용 페트 플라스틱병과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해 제작했고, 2025년에는 그 두 번째 시리즈로 자사의 앨범 9장을 에코레코드로 제작해 발매했다. 이 LP는 100% 재활용된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rPET)으로 제작, LP 한 장당 9개의 페트병에 해당하는 플라스틱을 사용하며 이는 기존 플라스틱 LP 제작 방식보다 탄소 배출량을 85%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기후 친화적 음악 산업을 위한 이들의 노력은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등 다른 아티스트들의 친환경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음악계 선한 영향력의 고리 : 매시브어택과 빌리 아일리시
영국의 트립합 밴드 매시브어택(Massive Attack)은 지난 2024년 자신들의 고향인 영국 브리스톨에서 35,000명 규모의 야외 축제를 열었다. 틴달 기후 변화 연구 센터(Tyndall Center for Climate Change Research)와 음악 산업의 배출량을 줄이는 데 주력하는 비영리 단체인 그리너 퓨처(A Greener Future)와의 협업으로 개최한 이 축제에서는 푸드코트의 음식을 모두 비건식으로 판매했다. (육류 소비는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유명하다) 또한 화장실의 배설물은 이후 퇴비로 활용하였고, 자동차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주차장을 없애 관객들은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해 공연장을 찾았다. 멤버들 또한 평소 장비 이동에 이용하던 트럭을 6대에서 2대로 줄였는데, 지난 공연에 비해 탄소 배출이 57%가량 줄었다고 한다.
그 결과 기후 연구자들과 협력해 펼친 이 공연은 음악 이벤트 역사상 가장 낮은 탄소 배출량이라는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틴달 기후 변화 연구 센터의 과학자들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콘서트가 다른 공연에 비해 에너지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을 98%나 줄였다고 밝혔다. 또한 공연장 및 무대 전력 공급 등을 기존 디젤 발전기 등에 의존하지 않고 100% 배터리 기반으로 운영한 이들의 노력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탄소 절감 사례로 실리기도 하였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또한 자신의 음악 활동 및 투어, 상품 제작 등 여러 부분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2024년 9월 퀘벡 시티 센터 비데오트론(Videotron Centre)에서의 투어를 시작으로 향후 자신의 모든 공연에 친환경적인 결정을 우선시하겠다고 밝힌 그는 공연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없애기, 무료 물 보충소 설치, 공연장 매점에 채식 음식을 강화함과 동시에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 구글 지도(Google Maps), 그리고 리버브(REVERB)와의 협업 등 다양한 환경 보호 캠페인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구글 지도와의 협업으로 콘서트 탄소발자국 70% 이상을 차지하는 팬들의 이동으로 인한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 공연장으로 가는 실시간 대중교통 정보, 도보 경로, 연비 효율적인 운전 경로 등을 안내했다. 덕분에 관람객은 더 편리하게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을 강조해 버스, 기차 탑승 등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음악 공연 및 투어 산업에서 환경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증진하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리버브(REVERB)와의 협업으로 남은 케이터링 식품과 팬들이 남긴 침낭, 텐트 또는 기타 양호한 상태의 캠핑 장비들을 노숙자를 지원하는 지역 단체에 기부했다. 모든 상품용 의류는 100% 재활용 면, 유기면 면 또는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사용했으며 포스터 또한 100% 재활용지를 사용했다. 또한 팬들에게 30일 동안 하루 한 끼의 식물성 식사를 섭취하겠다는 <지원 + 공급(Support+Feed)> 서약에 참여하도록 권하였다.
<지원 + 공급(Support+Feed)>은 빌리 아일리시의 어머니인 매기 베어드(Maggie Baird)가 설립한 단체다. 이 단체는 2022년 영국 런던에서 <OVERHEATED>라는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와 동명의 기후 행동 이벤트 또한 시작했다. 음악 산업 전반에 걸친 개인과 조직이 함께 모여 친환경 이니셔티브에 대해 논의하는 이 행사는 올해 7월 9일, 빌리 아일리시의 아레나 공연과 함께 베를린 데뷔 무대를 치렀으며 7월 14일에는 런던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자연을 지키는 대형 이벤트 : 글래스톤베리와 후지록페스티벌
친환경 음악 이벤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일부 아티스트의 공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 NGO Seaside Sustainability의 2024년 보고서 “콘서트의 환경적 영향”에 따르면 일반적인 음악 페스티벌은 평균 3일 동안 500톤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이는 참가자 1인당 하루 5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대표적인 록페스티벌인 글래스톤베리와 후지록 페스티벌 또한 지속가능한 공연을 위한 환경친화적 시도에 동참하고 있다.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음악 축제 중 하나인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은 2019년부터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을 조합한 하이브리드 발전 시스템을 도입했고, 2023년부터 축제 운영에 있어 전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무려 20만 명 규모의 행사에 필요한 모든 무대, 제작 공간, 시장에 화석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기,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운영하며 이를 위한 발전기는 폐식용유 등 재활용 바이오 연료로 가동된다. 아울러 매년 축제 기간에 발생하는 2,000톤 여의 폐기물의 처리를 위해 현장 곳곳에 12,000개가 넘는 쓰레기통을 배치하고, 스태프 및 자원봉사들이 생분해성 음식물 쓰레기, 비 생분해성 쓰레기, 캔과 병으로 분류 후 행사장에 설치된 임시 재활용센터에서 이를 수거 및 분류하여 재활용할 수 있도록 처리한다.
아울러 축제 기간 관람객들도 야외 캠핑을 즐기며 방대한 면적을 사용하는 축제 특성상, 다양한 항목에서의 환경 규정을 매년 준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야생동물 이동 통로 설치, 생울타리, 연못, 삼림 및 기타 민감한 서식지를 위한 보호용 울타리 설치, 박쥐 구역 및 주변 환경을 배려하는 방향성 LED와 페스툰 조명 사용, 인근 하천을 위한 수질 관리까지로 그 범위가 매우 폭넓다.
일본의 후지록페스티벌
가까운 일본의 후지록페스티벌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야외 축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 중이다. 매년 10만 명의 관람객과 함께 니가타현 유자와마치 나에바 스키 리조트에서 여는 페스티벌의 특성상 자연 보호와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축제의 방향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에 축제는 매년 “후지록 포레스트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축제로 인해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고 관객과 함께 숲을 보호하고자 한다. 행사장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축제장 주변 숲 간벌 과정에서 벌채한 삼나무를 사용해 제작하고, 이 나무를 활용한 종이를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또한 축제 공식 무료 뉴스레터인 축제의 메아리(Festival Echo), 포스터, 전단지 제작에도 사용된다.
축제 기간에 모인 종이컵은 이후 재생지로 변환되어 화장지로 제작된다. 음식 노점상들의 부스에서 발생하는 폐기름을 제거하는 데는 독특하게도 사람의 머리카락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헤어매트가 사용된다. 버려지는 머리카락들로 만들어진 이 매트는 해양 기름 유출 사고에 사용된다고 한다. 아울러 행사장 한 편에는 <NGO 빌리지>가 마련되어 방문객에게 지구 환경, 산림 보호, 평화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NGO가 모여 활동 정보를 제공하고 이후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한다.
야외 행사에서의 화장실 문제는 언제나 빼놓을 수 없이 곤란한 지점 중 하나다. “세계에서 제일 깨끗한 페스티벌”을 목표로 하는 후지록페스티벌은 2023년, 미생물의 힘으로 변기를 분해하여 이동식 화장실의 불쾌한 냄새를 줄이는 “어스 토일렛 프로젝트(Earth Toilet Project)”와 협업하였다. 자매 회사인 EM 세이카츠(EM SEIKATSU)가 시작한 이 친환경 프로젝트는 2018년에 처음 시행되었으며 행사장에 설치된 이동식 화장실 총 500개 중 180개소에서 실시됐다. EM 그룹 소속 프로젝트 멤버 16명과 다른 회사 직원 수십 명과 협력하여 활성화된 EM·1(AEM)을 상하수 탱크에 주입했고, 직원들은 매시간 AEM을 사용해 계속 청소했다. 이를 통해 방향제나 소취제, 세제 등의 화학물질은 일절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냄새가 나지 않는 청결한 화장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첫걸음을 뗀 한국 음악계의 시도들
재사용이 가능한 콜드플레이의 자이로밴드와 달리, 한국의 KPOP 팬들은 주로 각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맞게 제작된 응원봉을 개별 구매해 사용한다. 평균 4~5만 원 이내의 이 플라스틱 상품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일 년에 1~2회 이내. 그것마저도 몇 년에 한 번씩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곤 한다. 응원봉뿐 아니라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의 음원 순위 상위권 진입을 위한, 또는 포토 카드를 모으기 위한 구실로 중복으로 구매하며 버려지는 CD의 양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해외 아티스트들의 지속가능한 음악 산업을 위한 시도들에 응답하듯 국내에서도 미진하지만 한 걸음씩 의미 있는 시도들이 쌓여가고 있다.
블랙핑크는 공연장에서 플라스틱 생수병의 대체재인 멸균 팩 제조 기업 테트라팩 코리아(Tetra Pak Korea)와의 협업으로 만든 커스텀 워터팩을 제작해 판매하였다. 공연장에서 수거된 멸균 팩 쓰레기는 이후 화장지로 재활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YG엔터테인먼트는 관람객이 공연장에 도착할 때까지 남긴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는 “YOUR GREEN STEP” 설문을 시행해 관람객이 공연을 위한 이동과 숙박 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양을 파악하여 향후 온실가스 절감을 위한 기초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이는 2023년 블랙핑크 콘서트에서 국내 최초로 이뤄진 시도로, 지속가능 보고서를 발표해 온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그동안의 간접적 방법이 아닌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공연 내 탄소 절감을 시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페스티벌의 주제를 “그린”으로 내세운 행사도 등장했다. 바로 2025년 5월 송도에서 열린 “그린 캠프 페스티벌”이다. 2023년부터 시작한 이 뮤직 페스티벌은 태양광 패널, 바이오 에너지 등 친환경 전력을 도입하고, 푸드존에서는 플라스틱이 아닌 친환경 용기를 사용하는 등 그린 캠프라는 이름에 걸맞은 축제를 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물론 해외 축제들과 비교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시도들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국내 공연계에 새로운 흐름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이 외에도 뮤지션 혁오는 2021~22년 콘서트에서 현대차와의 협업으로 음향 장비 이동에 수소 전기 트럭을 사용하였고, 플라스틱을 최소화한 앨범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해외에서는 기후 위기를 음악 산업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아티스트들이 직접 해결의 주체로 나서고 있지만, 국내 음악계는 여전히 이 문제를 자신과는 다소 거리를 둔 사안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럼에도 가치소비에 익숙한 팬들이 먼저 변화를 이끄는 모습이 눈에 띈다. 기후 행동 팬 모임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은 소비 중심의 K팝 문화를 보다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나무 심기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개별적인 움직임을 넘어, 음악 산업 전반이 지속 가능한 공연 문화와 시장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야 할 때다. 지구가 지금보다 더 뜨거워진다면 우리가 함께 울고 웃을 무대조차 더는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